객실 설계의 공식 ⑤: 객실 7개 타입을 한 번에 설계하는 법 — 해운대 호텔 현장
해운대 호텔 현장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타입이 왜 이렇게 많지”였습니다. C부터 I까지, 알파벳으로만 일곱 개 타입이 필요했어요. 이전 편들에서 다룬 동해나 창원, 청도는 타입이 한두 개였는데 여기는 건물 구조 자체가 층마다, 위치마다 달랐습니다.
이 현장은 조금 다른 포지션에서 참여했던 곳이에요. 디자인은 별도로 받은 상태였고, 저는 현장소장으로 있으면서 그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고 시공을 총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이미 2D 도면과 3D 사진까지 다 있었는데도 건물주의 이해도가 조금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실내는 물론 복도, 외부 디자인, 주차장 배치까지 전부 풀3D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기존 디자인의 스펙과 텍스처, 마감을 하나하나 다시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바뀐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원래 디자인 의도를 거의 100%에 가깝게 끌어올릴 수 있었던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입이 7개나 필요했던 이유
②편에서 “타입 수는 취향이 아니라 건물이 정해준다”는 이야기를 드렸는데, 이 현장이 딱 그 예시입니다. 코너에 있는 방, 발코니가 딸린 방, 기둥이 방 안쪽으로 튀어나온 방이 층마다 섞여 있었습니다. 이런 조건을 무시하고 타입 하나로 밀어붙이면 어떤 방은 가구가 기둥에 걸리고, 어떤 방은 발코니 활용을 아예 못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일곱 개를 처음부터 따로 설계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일관성도 깨집니다. 대신 기준이 되는 모듈 하나를 먼저 완성하고, 그 모듈에서 건물이 강제하는 부분만 바꾸는 방식으로 갔습니다.

기준 모듈 하나를 정하고 변수만 바꾸는 법
기준 모듈은 침대, 미니바 콘솔, 욕실 이 세 가지의 관계를 고정한 하나의 ‘뼈대’입니다. 이 뼈대 안에서 침대 위치, 욕실 접근 동선, 콘솔 방향은 그대로 두고, 방마다 다른 조건(코너라서 창이 두 면인지, 발코니가 있는지, 기둥이 어디 있는지)만 반영해서 치수를 조정합니다.
비유하자면 레고 기본 블록 하나를 정해두고, 조립하는 자리에 따라 블록을 살짝 돌리거나 하나 더 붙이는 것과 비슷해요. 완전히 새로 설계하는 게 아니라 변형이라는 거죠. 이렇게 하면 일곱 개 타입이라도 방에 들어갔을 때 “다른 호텔에 온 것 같다”는 이질감이 없습니다. 가구 톤, 조명 방식, 콘센트 위치 같은 기본 문법은 전부 같으니까요.

타입이 많을수록 3D가 필수인 이유
여기서부터가 이번 편에서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타입 하나짜리 현장이면 사실 도면만으로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됩니다. 그런데 일곱 개 타입을 도면으로만 관리하면 어디선가 반드시 계산이 틀어집니다. 가구 발주 수량, 벽지 물량, 조명 기구 개수 같은 걸 타입별로 따로 뽑아야 하는데, 사람이 손으로 대조하다 보면 숫자 하나가 밀리는 일이 실제로 생깁니다.
3D로 타입별 모델을 다 만들어두면 이 물량을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뽑아낼 수 있고, 무엇보다 눈으로 한 번 더 확인이 됩니다. “이 타입은 콘솔이 짧아서 원래 발주 규격이 안 맞는다”는 걸 시공 전에 렌더에서 미리 잡아내는 거예요. 시공 중에 발견하면 그 순간부터 돈이 나갑니다. 자재는 이미 재단됐거나 발주가 들어갔을 테니까요.
타입이 하나뿐이면 이런 오류가 나도 손실이 방 하나로 끝납니다. 그런데 일곱 개 타입이 각각 여러 실씩 있는 구조라면, 같은 실수가 타입 안에서 그대로 복제됩니다. 도면 한 줄이 잘못되면 그 타입에 속한 방 전부가 같은 문제를 안고 갑니다. 그래서 타입이 늘어날수록 검증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면 안 됩니다. 저는 오히려 타입이 많은 현장일수록 3D 검증 단계에 배정하는 시간을 더 늘립니다.
실제로 이 현장에서 풀3D로 다시 만드는 과정 자체가 검증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존 도면과 3D 사진만 보고 넘어갔다면 놓쳤을 스펙·텍스처·마감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다시 짚으면서, 실제로 조정이 필요한 부분들을 그때 찾아냈습니다. 도면 위의 숫자와 실제 공간의 느낌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한 현장이었어요.
발코니 브릭 마감, 호캉스 사진 스팟이 되다
발코니가 있는 타입은 조금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발코니 벽 한 면을 브릭(파벽돌) 마감으로 처리했는데, 이게 단순히 외장 느낌을 내려는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손님들이 객실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걸 감안하면, 발코니는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자리”로 설계해야 하거든요.

브릭 마감은 실내의 매끈한 벽지·필름과 질감 대비가 확실합니다. 그 대비 자체가 “여기서 사진 찍으면 다르게 나온다”는 신호가 돼요. 실제로 요즘 호캉스(호텔에서 즐기는 바캉스) 후기 사진을 보면 발코니나 창가 자리가 유독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발코니를 그냥 여분 공간으로 두지 않고 이런 역할까지 생각하고 마감을 정하는 게 요즘 객실 설계에서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브릭은 관리가 필요합니다
브릭 마감은 표면이 거칠어서 먼지가 잘 앉고, 외부에 노출되는 발코니라면 오염과 백화(하얗게 뜨는 현상) 관리가 따라옵니다. 사진이 예쁘다고 무조건 좋은 자재는 아니라는 거죠. 이 부분은 운영팀에 미리 청소 주기를 안내해드리는 게 맞습니다.
이번 편 요약
- 타입 수는 건물이 강제하는 조건(코너·발코니·기둥)에 따라 정해집니다. 억지로 통일하지 않습니다.
- 기준 모듈 하나를 만들고, 조건이 다른 부분만 변형하는 방식으로 여러 타입을 일관되게 설계합니다.
- 타입이 많아질수록 도면만으로는 물량 산출 오류가 생기기 쉬워 3D 검증이 필수가 됩니다.
- 발코니 브릭 마감처럼 손님이 사진 찍는 자리는 질감 대비로 ‘포토 스팟’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 사진이 예쁜 자재일수록 유지관리 부담도 같이 검토해야 합니다.
다음 편(⑥)에서는 다시 욕실로 돌아갑니다. 유리 파티션으로 욕실과 객실을 시각적으로 연결하는 기법을 동해·해운대 호텔 현장·청도 1인1실 모텔 세 현장을 함께 놓고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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