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 설계의 공식 ⑥: 객실 욕실은 유리로 열어라
①편에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갔던 이야기, 기억하실까요. “욕실 벽 한 면을 유리로 열었다”는 대목이요. 이번 편에서 그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보겠습니다. 동해, 해운대 호텔 현장, 청도 1인1실 모텔 세 현장 모두 욕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유리로 열었는데, 이유는 다 같습니다. 4~5평 객실에서 욕실 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손실이거든요.
욕실 벽을 없애면 방이 넓어 보이는 이유
사람은 방의 크기를 실제 면적보다 눈에 보이는 ‘시야의 깊이’로 체감합니다. 욕실이 불투명한 벽으로 막혀 있으면, 그 벽까지가 방의 전부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벽을 유리로 바꾸면 시선이 욕실 안쪽까지 뚫고 들어가면서, 실제 면적은 그대로인데 눈으로 인식하는 공간은 욕실 안쪽 벽까지 늘어납니다.

동해 현장은 유리 부스와 욕조를 함께 넣은 케이스입니다. 욕조가 있는 쪽은 불투명 처리를 살짝 섞고, 샤워 부스 쪽은 투명하게 열어서 시선이 통하게 했습니다. 완전히 다 열어버리면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기니까, 어디까지 열고 어디를 막을지는 매번 조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유리로 바꿀 때 반드시 따라오는 공사 — 방수 재시공
여기서 많이들 간과하시는 부분인데, 벽을 유리로 바꾼다는 건 단순히 자재 하나를 교체하는 게 아닙니다. 기존 조적(벽돌·콘크리트 블록) 벽을 철거하면 그 자리의 방수층도 같이 사라집니다. 욕실은 물이 계속 닿는 공간이라 방수가 끊기면 아래층 누수로 바로 이어져요.
그래서 조적 벽을 헐고 유리 파티션으로 바꾸는 공사는 바닥과 벽 하단부 방수를 다시 잡는 작업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방수 범위를 욕실 바닥에서 그치지 않고, 유리 프레임이 닿는 벽면 하단까지 올려서 시공해야 나중에 물이 옆으로 새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놓치고 유리만 예쁘게 세우면, 몇 달 뒤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저도 이 공정만큼은 순서를 절대 건너뛰지 않습니다.
방수 재시공은 눈에 안 보이는 공정이라 견적에서 빠지기 쉽습니다. 유리 욕실 견적을 받으실 때는 유리 자재비 말고 방수 범위가 견적에 포함돼 있는지 꼭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모자이크 타일과 펜던트, 작은 디테일이 만드는 부티크 무드

유리로 벽을 여는 순간부터 욕실 내부는 사실상 객실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마감도 일반 욕실보다 신경을 더 씁니다. 청도 1인1실 모텔 욕실에서는 세면대 벽에 작은 모자이크 타일을 붙이고, 천장에는 매입등 대신 펜던트를 하나 달았습니다. 큰 타일 한 장보다 작은 조각이 모인 모자이크가 빛을 받았을 때 반짝임이 다르고, 펜던트는 매입등보다 확실히 ‘조명 기구’로 존재감이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은 원가로 따지면 큰 금액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진으로 찍었을 때, 그리고 손님이 직접 서서 거울을 볼 때 체감하는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저는 욕실 예산이 빠듯할 때 타일 전체 면적을 줄이더라도 포인트 자리 하나(세면대 벽이나 샤워 부스 정면)에는 좋은 타일을 쓰라고 말씀드립니다.
주거 욕실과 숙박 욕실은 설계 기준이 다릅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주거용 욕실과 숙박시설 욕실은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설계 기준이 다릅니다. 배수 용량이 대표적이에요. 숙박시설은 체크아웃 시간대에 여러 객실이 동시에 샤워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배수관 용량과 경사(구배)를 주거용보다 여유 있게 잡아야 합니다. 이걸 주거 기준으로 설계하면 성수기 체크아웃 시간에 배수가 밀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청소 동선도 다릅니다. 매일 객실을 청소해야 하니까, 문턱이나 단차를 최소화하고 배수구 위치를 청소 도구 동선에 맞춰야 합니다. 이 부분은 디자인보다 운영 효율의 문제라 발주자와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는 항목입니다.
유리 욕실이 안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장점만 이야기했는데, 유리 욕실이 모든 현장에 맞는 건 아닙니다.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숙소이거나, 애초에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컨셉이면 유리 개방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유리는 청소 빈도가 불투명 벽보다 확실히 높습니다. 물때나 지문이 바로 티가 나거든요. 이 관리 부담을 운영팀이 감당할 수 있는지도 미리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편 요약
- 욕실 벽을 유리로 열면 실제 면적은 그대로여도 눈에 보이는 공간이 넓어 보입니다.
- 조적 벽 철거 후 유리로 교체할 때는 방수를 벽 하단까지 올려 재시공해야 합니다. 견적에 이 부분이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 모자이크 타일이나 펜던트 같은 작은 디테일이 유리 욕실의 부티크 무드를 완성합니다.
- 숙박시설 욕실은 배수 용량과 청소 동선 기준이 주거용과 다릅니다.
- 가족 단위 손님이 많거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컨셉이면 유리 욕실이 오히려 안 맞을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를 보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요즘 현장에서 많이 쓰는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동 커튼입니다. 버튼 하나로 욕실 쪽 유리를 가릴 수 있어서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이에요. 다른 하나는 고급 호텔에서 많이 쓰는 스마트 유리(전기 신호로 투명·불투명이 전환되는 유리)입니다. 커튼 없이 유리 자체가 뿌옇게 바뀌기 때문에 훨씬 깔끔하지만, 비용이 꽤 많이 드는 편이라 객실 등급이나 예산에 맞춰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다음 편(⑦, 이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는 지금까지 계속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메인등 없는 객실 조명’ 원리를 제대로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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