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세 번째 매장을 마주하는 사장님과, 한 달 동안 현장에서 그린 3D

이번 현장 3D를 몇 번이나 다시 그렸냐고 물으시면,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한 달 내내 그렸거든요.

보통은 이렇지 않습니다. 계약 전에 이미지 몇 장 뽑아서 보여드리고, 도장 찍히면 그 파일은 덮어둡니다. 그 뒤로는 도면하고 현장만 오가죠. 저도 오래 그렇게 일했어요.

그런데 이번 스크린골프장 인테리어는 처음부터 그게 안 됐습니다. 이유가 있었어요.

스크린골프장 인테리어 3D 렌더링 - 1층 진입부 파사드, 세로 루버 마감과 곡선 진입 데크
1층 진입부. 필로티 주차장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스크린골프장 인테리어, 사장님은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매장을 세 번째로 여는 분이었어요. 이게 시작부터 모든 걸 바꿨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제가 안을 몇 개 만들어 가고, 클라이언트가 그중에 고르고, 거기서 조금씩 다듬고. 근데 이번엔 반대였어요. 사장님 머릿속에 이미 답이 꽤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앞서 두 매장을 직접 굴려보면서 “이건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고 쌓인 게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제 역할이 달랐습니다. 새 디자인을 제안하는 자리가 아니었어요. 사장님이 몸으로 배운 운영 노하우를 공간 언어로 옮기는 일이었죠. 손님 동선이 어디서 꼬였는지, 어느 자리에서 컴플레인이 나왔는지, 직원이 어느 구간에서 헛걸음을 하는지 — 도면 볼 줄 안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매장에서 몇 년 서 있어 본 사람만 아는 정보예요.

그 얘기를 듣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현장에서 보냈어요.

2D 도면 한 장 받고, 철골부터 다시 봤습니다

신축 현장이었습니다. 건축에서 넘어온 2D 도면을 받고 현장에 가서 철골 구조를 직접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 과정을 건너뛰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도면에 다 나와 있으니까요. 그런데 철골은 도면 위의 선하고 현장의 실물이 주는 느낌이 꽤 다릅니다. 기둥 하나가 방 안쪽으로 얼마나 들어와 있는지, 보 아래로 천장이 어디까지 내려올지 — 이건 서서 올려다봐야 감이 옵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현장을 오가면서 사장님하고 색상부터 배치까지 같이 정했습니다. 3D는 그 대화의 결과물을 그때그때 받아 적는 도구였어요. 오늘 얘기한 걸 저녁에 모델에 넣고, 다음에 만날 때 보여드리고, 또 고치고.

규모는 이렇습니다.

1층 진입 로비 · 계단실 · 승강기 홀
2층 타석룸 9실 · 프론트 · 라운지
3층 타석룸 9실 · 메인 프론트 · 회의실 · 직원 사무실
4층 실내 연습장(타석 16) · 트랙맨룸 2실 · 프로 사무실 · 카페

타석룸만 18개입니다. 이 숫자가 작업 방식을 거의 결정했어요. 한 방을 잘못 정하면 9번 틀리고, 두 개 층이면 18번 틀리니까요. 흡음 패널 하나 잘못 고르면 18개 방에 똑같이 붙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은 가로가 60m 가까이 됩니다. 타석룸 아홉 개가 그 길이를 따라 일렬로 늘어서요. 이 조건에서 사장님이 요구하신 게 하나 있었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이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이 됐습니다.

방과 방을 열어서 이어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8연동 도어를 넣어서, 문을 전부 열면 아홉 개 방이 하나의 긴 공간이 됩니다. 네 명씩 아홉 팀이 오면 서른여섯 명이 벽 없이 오가며 게임을 할 수 있어요. 평소에는 그대로 닫아두고 개별 룸으로 팝니다. 활짝 열리면서 동시에 완전히 막혀야 하는 문이라, 구조와 방음과 미관을 한꺼번에 풀어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3편에서 따로 다루겠습니다.

“대기 공간은 밝아야 하고, 타석은 어두워야 합니다”

사장님이 가장 여러 번, 가장 강하게 말씀하신 게 조명이었습니다.

“공용부는 무조건 밝게 가주세요. 어두우면 매장이 싸 보여요.”

“동반자 앉는 소파 쪽은 밝아야 하고요. 타석은 공에만 빛이 떨어지게, 스크린은 잘 보이게.”

처음 들었을 땐 당연한 얘기 같았는데, 막상 도면에 앉히려니까 이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세 구역이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거든요.

공용부부터 보겠습니다. 로비하고 복도가 밝아야 하는 건 분위기 문제만은 아닙니다. 손님이 예약한 방 번호를 찾아야 하고, 바닥 청소 상태가 보여야 하고, 무엇보다 조도가 떨어지면 같은 마감재를 써도 매장이 낡아 보입니다. 이건 두 번 겪어본 사장님이 확신을 갖고 계셨어요.

그다음이 대기 소파입니다. 여기가 핵심이에요. 스크린골프는 네 명이 와도 한 번에 한 명만 칩니다. 나머지 세 명은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그 사람들이 폰도 보고, 음식도 먹고, 얘기도 합니다. 여기가 어두우면 동반자 입장에서는 두 시간 내내 답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음에 예약을 잡을 수도 있는 손님이죠.

문제는 타석입니다. 여긴 반대로 어두워야 해요. 프로젝터는 빛을 쏘아서 상을 만드는 방식이라 주변이 밝으면 화면이 뿌옇게 뜹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넣어도 조명 때문에 스크린이 흐려 보이면 소용이 없어요. 대신 공은 보여야 하니까, 타석 매트 위에만 좁게 빛을 떨어뜨립니다.

스크린골프 타석룸 3D 렌더링, 인조잔디 위 스팟 조명과 밝은 대기 소파 공간
타석 매트 위에만 원형으로 빛이 떨어지고, 안쪽 대기 소파 공간은 전반 조명으로 밝게 유지했습니다. 이 대비를 몇 미터 안에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같은 방 안에, 그것도 몇 미터 거리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번 조명 계획의 전부였습니다. 빛이 옆으로 퍼지면 타석 쪽이 밝아지고, 너무 좁히면 소파 쪽이 어두워지고요.

조명 샘플을 현장에 늘어놓고 3D랑 맞춰봤습니다

이걸 카탈로그 숫자만 보고 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품 사양서에는 밝기(루멘)하고 색온도, 연색성(CRI, 조명이 색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보여주는지 나타내는 값) 정도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건 “인조잔디 위에 놓인 흰 공이 이 조명 아래서 어떻게 보이는가”거든요. 이건 숫자로 안 나옵니다. 켜봐야 알아요.

그래서 조명 샘플을 여러 개 가져다가 현장에서 직접 비교했습니다. 켜보고, 사진 찍고, 그 결과를 3D에 반영해서 다시 렌더링하고, 사장님하고 같이 보고, 또 바꾸고. 이 과정이 몇 번이나 돌았는지는 세지도 않았습니다.

솔직히 조명은 저도 매번 어렵습니다. 20년 넘게 현장을 다녔어도 조명만큼은 “이번엔 확실하다” 소리가 잘 안 나와요. 같은 제품이라도 천장 높이, 벽 색깔, 바닥 반사율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이니까요. 그래서 이번처럼 샘플을 놓고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결국 제일 빠릅니다.

같은 평면 두 개 층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2층하고 3층은 평면이 거의 같습니다. 복도 양쪽으로 타석룸 9개가 늘어서는 구조가 그대로 반복돼요.

여기서 사장님이 또 하나 짚어주셨습니다. 마감까지 똑같이 하면 손님이 자기가 몇 층에 있는지 모른다고요. 앞선 매장에서 실제로 겪으신 일이었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렸는데 위층이랑 아래층 풍경이 똑같으면 방향 감각이 안 잡히고, 방 찾다가 다시 카운터로 내려오는 손님이 생긴다는 거죠.

그래서 두 층을 의도적으로 갈랐습니다.

2층 복도 3D 렌더링, 우드톤 로커와 커피바, 다크 그레이 타일 바닥
2층 복도. 우드 톤 로커와 커피바, 짙은 회색 타일 바닥.
3층 복도 3D 렌더링, 밝은 회색 카펫타일과 화이트 톤 벽면
3층 복도. 같은 평면인데 밝은 회색 카펫타일과 화이트 톤으로 인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바닥재부터 다릅니다. 2층은 짙은 색 타일, 3층은 밝은 회색 카펫타일이에요. 소재가 다르니 발소리도 다르고 밝기도 다릅니다. 프론트 데스크 마감도 층마다 다르게 갔고요. 승강기 문이 열리는 순간 “아, 여기구나” 하고 잡히게 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그대로 지어졌나

90% 정도입니다.

3D에서 정한 걸 현장에서 거의 그대로 구현했습니다. 한 달 동안 현장에서 사장님하고 맞춰가며 그린 도면이라, 시공 들어가서 크게 틀어질 일이 별로 없었어요. 앞에서 실물 샘플까지 다 확인해뒀으니까요.

아쉬운 건 준공 사진이 없다는 겁니다. 오픈 일정이 급하게 잡히는 바람에 촬영할 틈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시리즈는 3D 렌더링 위주로 갑니다. 이 부분은 제 불찰이에요.

4층 실내 골프 연습장 3D 렌더링, 다열 타석과 유리 파티션 레슨실
4층 실내연습장. 여긴 조명 계획이 또 완전히 다릅니다.

본인 사업장 인테리어를 준비하신다면

세 번째 매장이라 가능했던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런데 처음 매장을 여시는 분도 똑같이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앞서 비슷한 업종을 운영해본 지인이나 프랜차이즈 본사에 “어디서 손님이 헛걸음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겁니다. 저희도 결국 사장님이 두 매장에서 겪은 실패를 재료로 썼거든요. 이 정보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2D 도면만 보고 계약을 확정 짓지 마세요. 특히 신축이나 오래된 건물이면 더 그렇습니다. 도면상 숫자와 실제 철골·기둥 위치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흔한데, 이 차이가 나중에 조명이나 가구 배치를 통째로 흔듭니다. 현장에 한 번이라도 서서 확인하고 넘어가시길 권합니다.

다음 편부터는 층별로 들어갑니다

이번 편은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굴러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편부터 층을 하나씩 짚어보려고 해요.

2편은 1층 로비입니다. 스크린골프장은 대부분 위층에 있어서 1층이 그냥 지나가는 통로로 남기 쉬운데, 이번엔 여기를 라운지로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계단 아래 같은 애매한 자리를 어떻게 썼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1층 로비 3D 렌더링, 계단과 자판기, 라운드 소파와 아트월
1층 로비. 다음 편에서 다룹니다.

※ 이 글의 이미지는 모두 직접 작업한 3D 렌더링입니다.
※ 클라이언트 및 현장 식별 정보는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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