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더와 실제 사이 시즌2 ④: 출입구가 붙어 있는 리셉션 — 곡선 카운터로 푼 이야기
이번 편은 포항의 호텔 현장입니다. 여기도 리뉴얼이었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는 한 단어로 정리됐습니다. 간결함.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쪽이요. 그런데 그 간결함을 방해하는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출입구가 카운터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호텔 1층은 손님이 양쪽에서 들어올 수 있는 구조입니다. 리셉션을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도 출입구, 오른쪽에도 출입구가 있어요. 접근성은 좋지만 설계자 입장에서는 반갑지만은 않은 조건입니다. 특히 왼쪽 출입구가 문제였습니다. 리셉션과 거의 붙어 있었거든요.
카운터라는 건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그게 출입구 바로 옆에 서 있으면 들어오는 순간 벽을 만나는 느낌이 듭니다. 문을 열자마자 시야가 막히는 거죠. 답답합니다.
그래서 카운터를 곡선으로 돌렸습니다. 각진 모서리가 출입구를 향해 서 있으면 그 각이 그대로 벽처럼 읽히는데, 모서리를 둥글게 말면 시선이 그 곡선을 타고 안쪽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답답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요. 조건 자체가 그러니까요. 다만 조금이라도 덜어내려고 한 선택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곡선이 이 로비의 인상이 됐습니다.
여기에 오픈 리셉션으로 간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칸막이나 유리로 막지 않고 열어두면, 좁은 조건에서도 공간이 이어져 보입니다.
곡선 카운터가 주는 덤 — 다칠 각이 없다
곡선을 택한 출발점은 답답함이었는데, 쓰다 보니 다른 장점이 따라왔습니다.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다 모서리에 부딪히는 일이 없어진다는 거요. 상판 아래로 걸림 없이 면이 이어지니 스쳐도 다칠 각이 없습니다.
숙박시설은 새벽에 취한 손님도 지나다니는 공간입니다. 이 “다칠 각이 없다”는 조건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저는 상업공간 가구를 그릴 때 손님이 가장 흐트러진 상태로 지나가는 장면을 한 번씩 상상해 봅니다.
높이 1,100mm의 근거
리셉션 데스크의 손님 쪽 상판 높이는 1,100mm 안팎으로 잡습니다. 서서 카드를 내밀고 서명하기 편한 높이가 1,050~1,150 사이거든요. 안쪽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직원은 앉아서 모니터를 봐야 하니 작업면을 750mm 전후로 낮추고, 그 높이 차이로 생기는 턱 뒤에 모니터·단말기·전선을 숨깁니다. 손님 눈에는 매끈한 한 덩어리로 보이지만 단면을 그려보면 2단 구조인 거죠.
하부 간접조명도 이 단면 안에서 결정됩니다. 데스크 밑면에 LED 바를 그냥 붙이면 바닥에 광원 점이 그대로 비칩니다. 바를 안쪽으로 물리고 낮은 차광 턱을 세워 빛이 한 번 꺾이게 만들어야 균일한 띠가 나와요. 아무도 안 보는 밑면 같지만, 광택 있는 바닥에서는 다 비칩니다.


오른쪽은 부산의 다른 호텔 현장에서 금속 마감 카운터를 제작하던 때의 사진입니다. 이 카운터 이야기는 ⑦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사인은 시안에서 정하고, 현장에서 다시 정한다
데스크만큼 중요한 게 그 뒤 벽의 사인입니다. 사인은 초기 3D 렌더링 단계에서 위치와 크기를 함께 계획합니다. 로비에 들어서면 카운터가 필연적으로 드러나고, 그 옆으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자리에 조명과 함께 배치하는 거죠.
다만 시안에서 정한 게 끝은 아닙니다. 스케일은 적정하게 잡아두지만, 클라이언트 의견에 따라 조정되는 일이 흔합니다. 이 현장에서는 돌출 텍스트의 크기와 폰트를 현장 마감이 다 끝난 뒤에 샘플로 제작해서 실제 벽에 대보고 확정했습니다. 협의를 거쳐 최종 시공한 거예요.
왜 이렇게까지 하냐면, 사인은 도면 위 숫자와 눈으로 보는 크기가 유독 많이 어긋나는 품목이기 때문입니다. 도면에서 적당해 보이던 글자가 벽에 붙으면 작아 보이고, 크게 키우면 갑자기 촌스러워집니다. 저는 “10미터 거리에서 읽히되 3미터에서 거슬리지 않는 크기”를 기준으로 삼는데, 이 감은 결국 실물로만 잡힙니다.
비용 관점의 팁. 곡선 카운터는 각진 카운터보다 제작비가 올라갑니다. 곡률이 들어가는 면적을 줄이는 게 절충안인데, 이 시안처럼 끝단만 말고 중앙부는 직선으로 가면 곡선의 인상은 살리면서 비용 상승 폭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체를 물결치게 마는 디자인은 예산과 상의한 뒤에 결정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 이번 편 요약
- 양방향 출입구 중 왼쪽 문이 리셉션에 붙어 있어 생긴 답답함을, 곡선 카운터와 오픈 리셉션으로 완화했습니다.
- 곡선은 덤으로 “부딪혀도 다칠 각이 없는” 안전 조건을 만들어 줍니다.
- 손님 쪽 1,100mm / 직원 쪽 750mm의 2단 구조, 하부 조명은 차광 턱이 있어야 균일합니다.
- 사인은 3D에서 계획하되, 돌출 텍스트의 크기·폰트는 현장 마감 후 샘플로 확정했습니다.
다음 편(⑤)에서는 같은 로비의 반대편, 카페테리아 존으로 갑니다. 작은 호텔의 조식 공간을 어떻게 계획하는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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